09.03.22 / TK |
며칠째 머리 꼭대기만 보고 있는 제일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마리카는 모자를 벗어들고 제일의 머리에 씌워눌렀다. 앞머리가 거슬릴 줄 알았는데 이마랑 같이 모자 속으로 쏙 들어갔다. 머리 뒤쪽으로 미끄러뜨렸더니 더 그럴싸해졌다. "야, 마리카한테는 작았는데 너가 쓰니까 꼭 맞잖아! 마리카 너 보기보다 머리 크다?" 옆에서 뒤집어져라 웃는 시안은 걷어차서 조용히 시킨 다음 마리카는 제일을 향해 을렀다.
"너도 다음부턴 갖고 싶으면 갖고 싶다고 말하란 말이야!"
제일은 여전히 마리카를 멀뚱멀뚱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마리카는 속이 터졌다.
"너 주는 거야. 좋으면 좋다고 말하라니까!"
그제야 제일은 머리 위로 손을 슬금슬금 올렸다. 소리내어 웃지는 않아도 입끝이 금방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을 마리카는 놓치지 않았다. 좋지? 좋지? 몇 번 거듭 물어본 뒤에야 제일은 옆에 바짝 붙은 마리카에게 겨우 들릴 듯 말 듯 '좋아'라고 웅얼거렸다. 등짝 한 번 찰싹 때려주고 다시 멀찍이 떨어져 마리카는 제일을 훑어보았다. 언니가 한참을 고심해서 만들어 준 모자다. 아빠가 그레이릿지까지 가서 끊어온 천을 동그랗게 오리고 꿰메어 모자를 완성한 날, 언니는 마리카에게 모자를 씌우고서 새침한 공주님 같다고 좋아했었다. 그 모자가 제일에게 맞추어 만든 것처럼 꼭 맞았다. 마을 아이들을 고르게 챙기는 언니는 마리카가 제일에게 모자를 주었다고 해도 섭섭하게 여기지는 않을 거라. 마리카는 살짝 분했다.
# by | 2009/03/22 15:31 | 낙서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