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2.19 / TK

"난 네가 여기 남아 주었으면 좋겠지만." 내가 여기 남은 건 저 애가 굳이 남아달라 애원했기 때문이라고. 여기가 좋아서도 아니고 저놈이 좋아서도 아니라고. 그렇게 말했더니 리우는 참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로베르트를 쳐다보았다. 로베르트는 이제 그때 리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안은 도통 얼굴 보기도 어렵다. 어제 성에 돌아왔다더라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침에 방으로 찾아갔더니 방 주인은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교역소로 가서 뭐라 뭐라 이야기를 듣더니 바로 제일, 마리카와 함께 사르사빌로 출발했다 한다. 하릴없이 현관으로 돌아오면 모아나가 안경을 밀어올리며 어김없이 말을 걸었다. "일 안 할래?"

여기서 싫다고 말하면 반찬투정하는 어린애를 대하는 것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여기서 뜸을 들이면 모아나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시선을 보낸다. 별 수 없이 로베르트는 챙이 넓은 모자를 찾아 쓰고 목에 수건을 두르고 양동이를 하나 들고 밖으로 나간다. 아침에 운 나쁘게 1층 현관 앞을 지나다 모아나에게 걸린 사람은 로베르트 외에 요벨도 있고 류키아도 있었다. 둘이 제각각 뚱한 목소리와 시원한 웃음소리로 인사를 했다. 날카로운 손톱이 자랑거리인 휴리로어가 양손에 모종삽과 호미를 들고 있다. 어색해야 할 그 모습이 참도 낯익다. 류키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안 지겨워요?"
"지겨워? 그래도 여기 야채는 맛있으니까 괜찮아."

난 지겹다고. 지겨운데 지겹다고 누구한테 하소연을 해. 요벨이 낄낄 웃으면서 등을 떠밀었다. 이놈의 밭일은 끝나지도 않는다. 작년 이맘때도 흙만 줄창 만졌는데 올해는 밭이 더 커져버렸다. 성 주인이 눈 앞에 나타나기를 해야 제발 밭일 말고 다른 일이라도 좋으니 시켜달라고 말을 할 텐데. 이러다 여름이 다 가고 가을이 올 때까지 흙만 만지다가 올해가 끝나버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놈의 인생은 한 해가 지나도 변하는 게 없다!



* 발매 1주년. 게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by 모에라 | 2009/12/19 02:26 | 낙서 | 트랙백 | 덧글(0)

 

09.03.22 / TK

며칠째 머리 꼭대기만 보고 있는 제일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마리카는 모자를 벗어들고 제일의 머리에 씌워눌렀다. 앞머리가 거슬릴 줄 알았는데 이마랑 같이 모자 속으로 쏙 들어갔다. 머리 뒤쪽으로 미끄러뜨렸더니 더 그럴싸해졌다. "야, 마리카한테는 작았는데 너가 쓰니까 꼭 맞잖아! 마리카 너 보기보다 머리 크다?" 옆에서 뒤집어져라 웃는 시안은 걷어차서 조용히 시킨 다음 마리카는 제일을 향해 을렀다.

"너도 다음부턴 갖고 싶으면 갖고 싶다고 말하란 말이야!"

제일은 여전히 마리카를 멀뚱멀뚱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마리카는 속이 터졌다. 

"너 주는 거야. 좋으면 좋다고 말하라니까!"

그제야 제일은 머리 위로 손을 슬금슬금 올렸다. 소리내어 웃지는 않아도 입끝이 금방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을 마리카는 놓치지 않았다. 좋지? 좋지? 몇 번 거듭 물어본 뒤에야 제일은 옆에 바짝 붙은 마리카에게 겨우 들릴 듯 말 듯 '좋아'라고 웅얼거렸다. 등짝 한 번 찰싹 때려주고 다시 멀찍이 떨어져 마리카는 제일을 훑어보았다. 언니가 한참을 고심해서 만들어 준 모자다. 아빠가 그레이릿지까지 가서 끊어온 천을 동그랗게 오리고 꿰메어 모자를 완성한 날, 언니는 마리카에게 모자를 씌우고서 새침한 공주님 같다고 좋아했었다. 그 모자가 제일에게 맞추어 만든 것처럼 꼭 맞았다. 마을 아이들을 고르게 챙기는 언니는 마리카가 제일에게 모자를 주었다고 해도 섭섭하게 여기지는 않을 거라. 마리카는 살짝 분했다. 

by 모에라 | 2009/03/22 15:31 | 낙서 | 덧글(0)

 

티어크라이스 / 사막의 기억

설정집이 나오기 전에 썼더니 대부분 날조설정이에요.
설정집과 가이드를 본 후 캐릭터에 대한 생각도 바뀐 부분이 많아서 가려둡니다.



계속 >>

by 모에라 | 2009/03/10 02:31 | 잡문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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